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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en eun young jung
The Narrow Sorrow: 삶에의 경의, 죽음에의 애도
누가 인간으로 간주되는가, 누구의 삶이 삶으로 간주되는가…무엇이 애도할 만한 삶으로 중요한가.1
동두천2을 배회하던 유난히 뜨겁던 어느 여름의 한 낮, 나는 “누구의 삶이 삶이며, 어떤 삶이 애도할 만큼 중요한 삶인가”라는 버틀러의 질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원주민을 밀어내고 거대하게 담장을 친,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남한의 이 작은 ‘군사 도시’의 시가지를 배회하며 마주치는 얼굴들은, 주로 이주민이라 호명되는 다양한 인종들이다. 거리를 활보하는 이국의 여자들은 아기를 눕힌 유모차를 밀고 나와 삼삼오오 한 낮의 수다를 즐기는 중이고, 골목골목마다 이국의 언어가 자연스레 들려온다. 미군들의 나잇 라이프와 여흥을 돕는 클럽의 수 만큼, 이국에서 온 여자들의 수가 넘쳐나고, 이국 음식점과 식재료를 파는 상점들 또한 넘쳐난다. 오래 전, 클럽에서 일하던 여자들의 시체를 흘려 보내던 신천3은 이제 그 주변을 시민공원으로 단장하고 미군과 클럽여성의 낭만적 데이트를 위한 장소를 제공한다. 반짝이는 수면과 녹음이 어우러진 여름의 냇가는 여자들의 시체를 흘려 보내야만 했던 비정의 역사를 더 이상 상기시키지는 않는다.
캠프 케이시Camp Casey4 근처의 보산동 클럽가는 형형색색의 촌스럽고 요란한 건물 외관과 간판들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적막하여 어떤 숭고함 마저 느끼게 한다. 가끔, 낯선 인물인 나의 등장이 이 골목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를 발견한 사람들의 몇몇 질문과 공연한 시비가 간간히 이 골목의 적막을 깬다. 그들은 아주 옛날, 그들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 처럼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들은 거의 미군을 위한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삶을 살아간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삶의 공간에 침범한 침입자가 되고 만다. 밀려드는 죄책감을 애써 숨기며 능청스레 그들을 상대한다. 그리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묻는다. “이 지역이 곧 개발된다고 해서 보러 왔는데, 언제 된다던가요?” “그런 소리 마, 내가 여기서 몇 십 년째를 사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소.” “미군도 곧 빠진다던데요?” “ 허이구, 그 소리를 벌써 십 수 년째 듣는데.. 아니야.” 전국 곳곳의 개발지역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자본우선 논리로 모든 것을 밀어내고 개발 ‘병’을 앓고 있는 반면, 이곳의 개발은 미군의 전세계적인 군사 재배치 ‘이후’의 문제가 될 것이다.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 금지되어 있다. 일반인에게 오픈한다고 알려진 날 소정의 절차를 밟았으나, 그들은 한순간에 말을 바꿔 동두천 지역 외 거주민의 견학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군인들이 드나드는 입구의 근처까지 바짝 다가가 문 너머를 기웃거린다. 사실 무엇이 저 문 너머에 펼쳐지는가를 궁금해 하는 것은 아니다. 공주봉에 올라서서 바라봤던 캠프 케이시의 전경은 그야말로 하나의 이상적인 근대 도시와도 같았다. 합리적으로 구획된 블럭들과 잘 닦여진 도로, 적절하게 어우러진 녹지가 안정감을 자아내던 것을 기억한다. 최근 캠프 케이시 주변의 골목들은 도시가스 공사가 한창인데,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부대 안쪽과 바깥쪽의 편의시설이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 적으로 느껴진다. 담장을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골목을 배회한다. 건물의 배치와 구조들이 일반적인 도시의 풍경을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공간의 모습은 늘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그대로 현현한다. 경계의 삶, 틈새의 삶, 등록되지 않은 삶, 뿌리내리지 않는 삶. 그 삶이 현전하는 장소들은 번지 없이 잘게 나뉘어 정주민들이 버려둔, 잉여로 남겨둔 공간을 메운다.
상패동의 무연고 공동묘지는 6-70년대 남한의 근대적 욕망의 군사화와 그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유령’들의 장소다. 최초의 반환 기지인 캠프 님블Camp Nimble을 끼고 도로변을 한참 걷다 보면 울룩불룩 묘지들의 형체가 어렴풋이 드러나는 작은 동산이 보인다. 한 여름의 잡초들은 무섭도록 빠르게 자라나는 탓에 묘지로 올라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여러 차례 기어오르기를 시도했지만 나지막한 동산인데도 올라설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게 뒤덮혀 버린 것이다. 얼핏 잡초들 사이로 보이는 검은 말뚝들이 번호를 달고 있을 뿐, 이 곳에 묻힌 이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아 낼 수 없다. 어떤 이들의 죽음은 너무 빠르게 잊혀지고, 한여름의 잡초는 너무 빠르게 자란다. 묘소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내려오면서 동산 초입의 작은 냇가를 새삼 발견한다. 본래 물이 흐르는 곳에 묘자리를 쓰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의 전통적 지혜를 무시한 채 물길이 이 작은 동산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것이다. 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오히려 어떤 ‘언어’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 그들을 위해 묵념한다.
어둠이 내려 앉으면 보산동의 클럽가는 한낮의 침묵을 잊고 떠들썩해 진다. 번쩍이는 네온과 소란스러운 음악, 여자들의 웃음소리, 남자들의 허세와 고함이 여름공기의 습한 기운을 타고, 이국음식들의 향기와 술냄새, 그리고 ‘어떤’ 비 가시성들이 뒤섞여 흐른다. 미군들, 카투사들, 상점주들, 클럽주들, 마마상들, 클럽의 여자들, 상점의 점원들, 배회하는 거리의 구경꾼들과 보행자들. 다채롭기 이를데 없는 인종, 젠더, 권력, 국적, 직업, 정체성의 혼란한 뒤섞임들 속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위치지어 짐에도, 이들의 삶에 강한 연대감을 느끼고 있다. 낮에 들렀던 필리핀 이주여성들을 위한 작은 공동체 미사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타갈로어의 신성한 음성들이 이 거리의 떠들썩한 소음과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을 상상한다. 성스러운 종교적 언어들이 이곳의 저열하고 취약하며 세속적인 언어들과 리듬의 조각을 하나씩 맞추어 가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 ‘벌거벗은 삶’ 의 내부를 채워나가는 동시에,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삶의 장소들을 촘촘히 메우고 있는 숨쉬는 언어들이 지금 이 기이한 여름밤의 공기들처럼 엄연히 우리에게 감지된다.
누가 인간으로 간주되는가? 누구의 삶이 삶으로 간주되는가? 무엇이 애도할 만한 삶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나는 이 거리를 빠져나오며 다시금 질문을 반복한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버틀러 식으로 말하자면 ‘구성적 외부’인, 아감벤식으로 말하자면 ‘호모사케르Homo Sacer’인 이들의 삶과 죽음은 어떻게 애도받을 수 있을까? 나는 페미니스트 예술가로서, 다시 한번 주권의 밖에 있는 비체적 개인들의 정치성을 재현하리라 마음먹는다. 이 도시의 역사와 그 풍경을 가로지르면서, 그리고 그 공간을 메꾸고 있는 삶의 공기를 나누어 마시면서 삶에 대한 경의와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해야 함을 강하게 받아들인다. 삶과 죽음이 위계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목격하고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누구나 평등하게 삶을 상실할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나 스스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웃이, 또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해가, 우리에게 어떤 ‘공공의 영역’, 혹은 ‘공동체’의 가능성을 이 도시 안으로 불러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