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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en eun young jung

2009-05-26/ 6page
‘막장드라마’를 더이상 환영하지 않는 이유
정은영/작가

문제 하나. 믿을 수 없는 시청률을 거듭 갱신하다 지금은 종영한 막장드라마의 최고봉 ‘아내의 유혹’의 주인공 구은재와 신애리의 차이점은? 답은, 별 차이점이 없다. 는 것. 이 두명의 여자는 어디서든 수가 틀리면 제 물건이건 넘의 물건이건 홀라당 내리쳐버리는 것으로 요란한 등장을 알린다. 타인의 고통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이 얻어낸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악다구니를 할 뿐이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야합하는 건 막장드라마 히로인들의 기본이다. 깡패든, 배신한 옛애인이든, 과거의 동지든, 적이든, 누구든. 성공적이면 전선이 수립되고, 실패하면 등을 돌리거나 복수하면 그만이다. 모든 모략과 음해의 중심에는, IT와 모바일 산업의 메카인 대한민국답게도 휴대폰이 있다. 그들은 늘 신상 휴대폰을 이용해 상대의 등에 칼을 내리 꼿기 위한 문자, 이미지, 음성, 영상 등을 자유자재로 날리고, 그럴때마다 그들사이의 긴장은 서늘하리만치 팽팽해 진다. ‘자본’을 가지고 노는 수위는 또한 어떠한가? 나같은 무명의 예술가들은 아마도 죽는 그 날까지 구경하기도 힘들 액수인 몇십억대 돈이 늘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된다.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상처와 피해의식,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서슬퍼런 복수의 칼날은 항상 거침이 없다. 그들이 이토록 악다구니를 부리며 ‘살아 남아야만’ 하는 이유는 결국은 ‘상처의 치유’라는 당위로 가장한 자기욕망의 한계점을 더이상 컨트롤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나와 한 친구는 전 인류의 ‘아유(아내의유혹)’화를 통탄하며 우리 시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애청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음해전술이 업글에 업글을 거듭할수록, 그들의 악다구니가 극에 달하면 달할수록, 거래되는 돈의 액수가 커지면 커질 수록, 그들의 불안함과 두려움 또한 최고조에 달하는 극적긴장은 실은 우리가 마주한 세상과 비교해보아도 전혀 다를바가 없었던 것이다. ‘막장드라마’는 우리에게 종영을 약속해 주지만, ‘막장시대’는 대체 언제 종결 되는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슬펐다. 개인의 일상과 삶을 멈추고 쉼없이 촛불을 들어도, 일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일터를 빼앗겨야만 해도, 자신의 주거지로 부터 내쫒기거나, 생존을 요구했을 뿐인 이들이 난데없이 화염에 휩싸여도, 혹은 그렇게 개혁의 역사를 원했던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모두를 충격과 비탄속에 몰아넣어도, 철저하게 신애리이며 구은재인 누군가의 모략은 수위를 높혀가기만 했다. 남한의 전 대통령 서거에 조전을 보내자마자 핵실험에 돌입한 북한의 도발은 막장대본을 더욱 막장으로 만들기 위해 ‘부활한’ 민소희의 귀환쯤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민소희 역시 신애리, 구은재의 판박이같은 존재다. 이쯤에서 던지는 또다른 문제하나. 이명박과 김정일의 차이는? 막장드라마의 충실함은 이 질문에 답을 하는 순간 다시 시작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