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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en eun young jung





탑승객 The Pass/enger circulating book, 2007

           

수면위로 삐죽이 빠져 나와있던 무릎을 안으로 밀어 넣으며 욕조 속으로 벌거벗은 몸 전체를 깊게 담근다. 물이 찰랑 하고 넘쳐 흐른다. 욕실바닥으로 흘러내려 서서히 움직이는 물을 바라다 보며, 나는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Putting back the protruding knees from the surface, I dip my whole naked body deeply into the bath. The water overflows. In seeing the slow movement of the water flown over onto the floor, I come to think that it is time to leave.
     
탑승객   The Pass/enger
     
너는 무빙워크에 올라 서서 여행 카트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린다. 무빙워크가 천천히 움직인다. 21번 탑승구로 향해 있는 그 움직이는 길 위에서 너는 조금, 흥분한다. 마음이 급한 사람들이 너의 옆으로 수 차례 빠르게 지나가고, 그들의 바쁜 길을 막아서지 않기 위해 너는 자세를 조금 바꾼다. 끝없이 움직일 것만 같던 길이 끝나고, 21번 탑승구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벌써 대합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유리창 밖으로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들이 보인다. 날은 꽤 어둑해졌고 불빛들이 선명하게 주변을 밝히기 시작한다. 너는 창에서 가까운 자리를 골라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어 앉는다. 창 너머의 불빛을 따라 눈을 바쁘게 움직이던 네가 아주 작은 소리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옆자리의 남자가 너를 흘낏 쳐다보더니 기지개를 켠다. 남자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칭얼거리는 아이를 힘겹게 달랜다. 남자는 도망치듯 자리를 뜨고 여자는 원망스런 눈으로 남자의 등을 쫓는다. 이내 너는 중얼거린다. 기다리는 인생은 딱 질색이야.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합실에서, 이 기다림의 공간에서 너는 늘 두근거린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 두근거림은 21번 탑승구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질 것이라고 너는 믿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저 거대하고 미끈한 비행기의 모습 또한 탑승구에 들어서는 순간 잊혀질 것이다. 탑승시간의 연기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흐른다. 대합실의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몇몇 다혈질의 남자들이 게이트 앞의 직원에게 달려가 항의해 보지만 직원들은 연신 고개를 흔들 뿐이다. 너는 이 기다림의 시간을 한껏 누리고 싶지만 대합실은 점차 소란스러워 진다. 사람들은 참으로 쉽게 분노하곤 한다. 너는 며칠 전까지 너의 연인이었던 나를 떠올린다. 너는 나에게 늘 물었었다. 너는 왜 그렇게 매일 화가 나있는 거니? 적의를 가득 품고 세상을 살아가던 나는 그런 질문을 하는 너를 향해 기가 막히다는 듯 더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더 이상 네 화가 풀리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어. 너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뜨거운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덧붙이며 나를 떠났었다. 대합실의 소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분노하는 어른들과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움직임이 점점 더 너를 성가시게 한다. 너는 가방 안에서 엠피쓰리 플레이어를 꺼내고 헤드폰을 머리에 두른 채 눈을 감고 혼자만의 시공간으로 빠져들어 간다. 너는 그렇게 스스로를 현실의 세계에서 격리된 상태로 만드는 것을 능히 해내곤 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나른하게 몸을 맡긴 네가 대합실의 한편에 존재한다. 너는 왜 나의 시간 안에서는 단 한번도 그 몸을 누이려 하지 않았던 걸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21번 탑승구의 문이 열린다. 이제 너의 기다림이 사라지려 한다. 대합실을 촘촘히 메워가던 모든 것들도 저 21번 탑승구 안으로 서서히 사라져 간다. 너의 뒷모습, 너의 유일한 동반자인 여행가방, 그리고 너의 달뜬 두근거림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문이.
닫힌다.
  You, standing on the moving walk, finger the handle on the luggage cart. The moving walk slowly moves. On the way to Gate 21, you get slightly excited. People in haste pass you fast several times, and you change your posture a little not to block them. The seemingly infinite path eventually ends, and the lounge is being filled with people waiting for Gate 21 to open. Over the windows are airplanes in the preparation of departure. It has become rather dark and lights begin to illuminate the surroundings. You take a seat next to the windows and nearly bury yourself into it. In the middle of pursuing the light over the windows, you start humming in a very soft voice. The man next to you glances at you, and then stretches his arms. The woman who should be his wife scarcely calms down the fretful child. The man escapes there and the woman gazes at his back with a resentful look on her face. You soon mumble. I am disgusted at waiting in life. Yet strangely enough in the lounge, in this very space for waiting, you said your heart went fast all the time. But you believe that this excitement would vanish as you enter into Gate 21. The grand and sleek figure of the plane, as you board, would be forgotten as well. There is an announcement that there would be a delay. People in the lounge get into a commotion. A few hot-blooded men rush towards the members of staff in front of the gate to complain, but they merely keep shaking their heads. You want to savour the waiting time, yet the lounge grows noisier. People get enraged really easily. You recall me - the one who used to be your lover until just a few days ago. You always asked me. Why are you that angry every day? I, having been living a life immersed in hostility, got increasingly exasperated at you making such a question. I cannot just wait until your wrath abates. You said that and left me adding that it was fortunate that you were not a vehement person. The uproar in the lounge does not recede shortly. The movements of those provoked adults and inquisitive children get to ruffle you. You bring an MP3 player out of your bag and putting on headphones you close your eyes to go into your own time-space. You were capable of isolating yourself from realities as such. Leisurely going with the flow of time, you exist in one corner of the lounge. How come you did not recline yourself even for once within my time. Time goes on, and Gate 21 is eventually open. Now your waiting is about to vanish. Everything that has been crowding the lounge slowly evaporates into Gate 21. Your back, your only companion suitcase, and your flippant excitement.
There remains nothing.
The door.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