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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en eun young jung
여성국극, '남자'되기의 정치 여성국극은 1950년대 한국전쟁을 전 후로 큰 인기를 모았던 창무극의 한 형태로, 주로 판소리 사설이나 대중소설, 혹은 고전 야사등을 전형적인 신파 로맨스극으로 각색해 공연한다. 여성국극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는 오로지 ‘여성’이어야만 하는데, 따라서 여성국극 공연은 대게 대본의 질이나 공연의 연출/구성에 앞서 남역배우의 캐스팅과 수행이 극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니마이(남자 주연으로 매우 용맹하면서도 낭만적인 정서를 가진 이상적 남성)’, ‘삼마이(남자 조연으로 익살과 유머를 통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고 극의 재미를 이끌어가는 배역)’, 그리고 ‘가다끼(남자악역으로 주로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고 여자주연을 학대한다.)’가 이러한 여성국극의 대표적인 남성배역이다. 이러한 특징은 일반적인 전통 창극이나 순수 연극과 구별되는 국극만의 차별성와 전복성을 함의한다. 역사적으로 여성국극의 시작은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의 전신인 시공관에서 1948년에 공연된 ‘여성국악 동호회’의 창무극 <옥중화>를 그 발판으로 한다.(반재식, 2002;김기형, 2009) 2 이 작품은 국악계에 만연한 남성들의 권위의식과 폭력성에 반감을 가진 여성들이 국악계 내부를 벗어나서 여성들만의 무대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염원에서 시도되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반재식, 2002) 또한 여성 명창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공연이 다양화되는 국악계의 역사적 맥락에서 여성 국악인들의 공연과 무대에 대한 역량 강화와 자부심이 여성공연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견해 역시 두드러진다. (김기형, 2009) 이러한 견지에서 90년대 이후의 여성국극에 관한 연구와 발언들은 여성국극이 매우 여성주의적/여성주체적 공연 형태임을 강하게 역설한다. (백현미, 2007; 김지혜,2009) 당대의 여성명창으로 알려진 박녹주, 김소희등이 함께 했던 <옥중화>는 그러나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했다. 이는 가장 대중적인 사랑극인 판소리 춘향전을 각색한 작품이었지만 관객들은 여성이 연기하는 ‘남자’ 이몽룡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작품에서 이몽룡은 임춘앵이 연기했는데, 당시 임춘앵조차도 남역을 연기해야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반재식, 2002) 이후 여성국극을 최고의 흥행한 대중문화로 이끌었던 전설의 남역 연기자가 바로 그 임춘앵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여성국극이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서였고, 1953년 종전 이후 부터 여성국극 공연과 공연자들은 이 시기의 가장 강력한 대중문화의 표상이자 우상으로 떠오르게 된다. 임춘앵이 이끌었던 ‘여성국극 동지사 임춘앵과 그 일행’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60년대 후반 쇠퇴기에 이르기까지 십 수년에 걸쳐 공연작의 거의 대부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러한 토양은 수많은 여성국극 공연과 극단을 형성하며 여성국극이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한 시기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여성국극은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든다. 헐리우드 영화와 같은 보다 근대적인 양식의 대중문화 보급, 시스템을 다듬지 못하고 후배 배우를 양성하지 못했던 과실, 연기에만 몰두한 채 시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던 여성국극 인력들의 시대정신의 결여등이 그 쇠퇴의 원인으로 파악되어 왔다. 젠더연구자 김지혜는 가부장제의 성별분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쇠퇴의 주요 원인으로 덧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말해, 마케팅, 홍보, 재정관리등의 행정, 운영 업무가 남성들에 의해 주도 되면서 여성 배우들이 자신들의 공연을 지속시키는 경제적 자본을 축적하지 못했고, 남성 사업부에 의한 악의적인 횡령이나 손실등의 금전사고를 알아채지 못한 채, 현실적으로 공연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을 고스란히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김지혜, 2011) 또한 근간에 제작된 여성국극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2011)>은 그 쇠퇴의 원인으로 1970년대 군부독재정부의 전통문화제정사업이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여성국극을 폄훼하고 전통문화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없도록 남성 국악인들과 공모하였음에 강한 혐의를 둔다. 이와같이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조직의 붕괴가 남성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다른 공연조직들에 비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재기의 가능성과 기회로 부터 번번히 멀어지기만 했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여성국극의 쇠퇴 이후 많은 배우들이 여성국극의 운명과 함께 쇠락하거나 비참해지기도 했다. 대개의 경우 결혼으로 무대를 떠나거나 요리집등에서 여흥을 돋우는 노래를 부르고 약장수를 따라 다니며 초라한 장터 공연에 조금씩 등장하는 방식으로 다시 한번 전통적 성역할을 강요하는 사회적 요구에 적응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또한 많은 수는 배우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초라해진 무대에 결코 서지 않았으며, 해외로 이주하거나 완전히 다른 분야로 이동했다. (조영숙, 2000; 김지혜, 2011) 1980년대 이후 당시의 권위를 찾기 위한 몇몇 움직임들이 시도 되었고, 드물게나마 규모있고 의미있는 공연들이 지속되고 있으며, 1990년대 이후로는 여성국극과 관련된 연구, 서적, 재현물들이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여성국극의 부활을 꿈꾸는 이러한 치열한 움직임 속에서도 이미 초로의 노인이 되어버려 무대에 서는 것이 힘들어진 배우들이 많아졌고, 지금도 여전히 노환이나 질병등으로 투병중인 배우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서 투병중이던 조금앵 선생이 영면했다. 이로서 1세대 여성국극 남역스타는 생존과 거취가 확인되지 않는 김경수 선생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사라져가는 전 세대의 종적에 더해, 후속 세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성국극의 무대는 나날이 비어가고 있다. 나는 여성국극을 바라보는 여러 분석들 중에서도 특히 여성국극의 남역배우들이 수행해왔던 ‘남성되기’가 함의하고 지시하는 바에 주목해 왔다. 남성성은 흔히 모방 가능하지 않은 것, 매우 본질적이며 생득적인 것으로서 생물학적 남성의 몸이 각인하고 수행해야만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 여성성이 자주 희화화되는 방식으로 남성들에 의해 모방되는 것에 비견해 본다면 남성성은 더 과장되고 강화되는 방식으로 여전히 남성 스스로에 의해 강요되거나 연기되는 경우가 잦다. 영화나 드라마의 서사에서 간혹 여성에 의해 모방된 남성성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러한 모방은 주로 어떤 위기를 모면하거나, 남성의 권위를 전유하기 위해 아주 일시적으로 쓰여진 후, 재빠르게 버려져야만 그 유용성을 갖는다. 여성국극에서의 남역배우들은 여성의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남성이 되기 위한 꾸준한 훈련을 반복함으로서 거의 이상에 가까운 남성상을 만들어낸다. 종종 여성 관객들은 이 ‘수행되는 중인’ 남성과 사랑에 빠짐으로서 공연장을 공공연한 동성애적 욕망이 허락되는 공간으로 탈바꿈 시키기도 한다. 생물학적 여성에 의해 연기되는 ‘남성’은 남성성이 복제 가능하며 결코 본질적인 것이 아님은 물론,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젠더를 주장하는 후기구조주의적 성별 이론을 또한 상기시킨다. 더우기 이들의 성별 모방은 무대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무대 밖의 실생활에서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수행 됨으로써, 성별 정체성이 때론 변화하거나 탈착가능한 것임을 경험적으로 인지한다. 배우 조금앵이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무대위에서 화려한 칼싸움을 수행하는 동안 관객은 물론 본인조차 임신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증언이나, 남역연기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신체 또한 남성처럼 변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배우 조영숙의 주장이 그러하다. 배우들의 경험과 구술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젠더수행을 통한 분석들이 사회규범의 기반을 직조하거나 통념을 흔들기도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성을 정치적 영역으로 불러들인 여성주의의 공로에 힘입어 여성국극의 성별정치는 사회적 규범과 인식들로 부단히 침투한다. 한편 여성국극의 여러 면모를 조망하면서 나는 내 스스로가 ‘작업하기’를 통해 수행하는 대부분의 고민과 갈등을 국극배우들의 ‘예술하기’와 ‘살기’의 과정에 투사하거나 교차 시킨다. 남역배우들이 남성을 연기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가장하는 masquerading” 행위, 꾸준한 훈련과 리허설을 통한 ‘이상적 남성’을 향한 정교화 과정, ‘진짜 남자’에 대한 배우 개개인의 끊임없는 연구과 해석의 과정, 그리고 그것을 수행하려는 부단한 의지와 노력, 예술과 삶, 무대 위와 무대 밖의 중첩과 교차, 갈등과 경합등은 언제나 나를 자극했다. 나는 그들과 나 사이의 어디쯤, 오랜 세월, 이 노령의 배우들이 존재하고자 늘 단단히 발을 딛던 그 경계적 장소 어디쯤에 카메라를 세워 둔다. 모니터엔 의도적으로 잘리고 선택된 프레임들이 전송되고, 이것은 단지 무대와 배우를 반복해 재현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재현의 의지일 뿐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나는, 그들의 정교하고 미세한 어깨짓과 손발짓, 열정어린 목소리, 눈빛과 얼굴의 깊은 주름위에 겹쳐진 언어들 - 성별규범을 교란하고 사회적 통념을 폐기하는, 그들의 체화된 지혜인 그 수행언어의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11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미지의 대지’의 출판프로젝트로 기획되어 출간된 ‹경험:글로벌 시대의 아시아 여성과 문화›에 실렸던 필자의 동일한 제목의 글 중 일부를 발췌하여 그에 기반하고 있다. 여성국극에 대한 역사적 사료나 이론적 연구들은 여전히 몇몇의 입장과 견해가 갈리는 와중에 그 존재에 대한 의미화와 이론화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이 글에서 여성국극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그 의미에 대한 시각을 언급할 때에는 다음의 도서 및 논문을 주된 자료로 참고하였으며 더러는 배우들과의 인터뷰를 통한 구술기록에 의거하고 있슴을 밝힌다. — 김기형 외, ‹여성국극 60년사›, 문화체육관광부, 2009 — 김지혜, ‹1950년대 여성국극의 단체활동과 쇠퇴과정에 대한 연구›, 한국 여성학 제27권 2호, 2011 — 김지혜, ‹1950년대 여성국극의 공연과 수용의 성별정치학›, 한국극예술연구 30집, 2009 — 백현미, ‹1950년대 여성국극의 성정치성2›, 대중서사연구 제18호, 2007 — 반재식, 김은신, ‹여성국극왕자 임춘앵전기›, 백중당, 2002 — 조영숙, ‹무대를 베고 누운 자유인›, 명상, 2000 — 전진석, 한승희, ‹춘앵전›, 서울문화사, 2008-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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