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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en eun young jung

전성기에 은퇴하는 밴드에 대하여.
정은영(작가)

미켈란젤로 피스똘레또 밴드 (이하 미키밴드)는 선감도에 자리한 경기창작센터의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에 참여중이던 작가 박보나와 조은지에 의해 2010년 결성되었다. 처음부터 그들이 이 으스대는 이름으로 밴드를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소 오지에 속하는 선감도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버스인 123번 버스의 번호를 딴 123밴드가 미키밴드의 전신이다. 123밴드라는 이름으로 선감도의 빈 상가에서 ‘임대’와 ‘딴 섬 주인’을 노래한 이후, 밴드는 오래전 머물렀던 이탈리아의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을 제공한 예술가이자 재단의 이름이기도 한 ‘미켈란젤로 피스똘레또’를 떠올렸다. 그들은 얼마간의 명성이 담보된 영향력 있는 남성예술가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호명해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밴드명은 그렇게 유래했다. 그들은 ‘미켈란젤로 피스똘레또’ 라는 이름이 주는 위엄과 예술의 권위와 심각성, 복잡성 같은 것들을 한없이 거슬러 오히려 느닷없고 이질적인 것, 가볍고 평평하고 쉬운 것을 향한다. 대게 호명은 수행을 결정하지만, 미키밴드의 수행은 번번히 호명을 배반한다. (전략따윈 없을 것 같은) 미키밴드의 이러한 전략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밴드란 말인가? 그들에게 밴드는(혹은 예술은) 한번도 닿은 적 없는 판타지이며, 밴드의 공연은(혹은 예술행위는) 결코 일치하지 않는 립씽크와 같다. 박보나에게는 ‘건즈 앤 로지스’가, 조은지에게는 ‘프린스’가 그렇다. 그들의 무대 장악력과 폼나는 퍼포먼스는 미키밴드를 열광하게 하고 추동하지만, 동시에 좌절시킨다. 미키밴드의 예술행위는 가장 미술이 아니어야 할 것 같은 형식을 취하면서, 뻔뻔스럽게 유치한 도전들이 적나라하게 실패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목적없고 욕망없는, 자꾸만 실패하는 판타지는 그들의 작업이 가진 태생적 속성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그들의 행위가 개입하는 풍경이 함의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구조를 폭로한다. 외딴 섬의 빈 점포, 매매를 기다리는 땅, 조악하게 흉내낸 미국식 주택으로 줄 지어 선 팬션타운이나, 초현대적 건축물이 솟구치는 국제도시, 그와 동시간적으로 개발의 속도에 무차별하게 빨려들어간 허물어져가는 구시가지의 쓸쓸한 폐허들과 버려진 공동체나 퇴물이 되어버린 촌스러운 유원지 같은 이상한 풍경들은 미키밴드의 개입으로 점점 더 기이해진다. 밴드는 이러한 풍경을 단지 배경삼아 뮤직비디오를 찍을 뿐이지만, 풍경은 점점 더 전면화 되고 정치화된다.

그들은 밴드이지만 뮤지션이거나 싱어송 라이터는 아니다. 모든 곡의 가사를 쓰지만 작곡을 의뢰하고 타인의 목소리로 녹음된 노래에 입을 뻥긋뻥긋거린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밴드의 멋부리는 ‘룩look’을 흉내내지만, 어쩐지 조금씩 조금씩 빗겨나며 어색해진다.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 혹은 아무것도 아닌 행위들은 어떤 것은 밝혀내고, 어떤 것은 은폐한다. 잘 들리지 않는 가사는 반복을 통해 점점 선명해지면서 의미화의 과정을 드러내지만, 무엇도 잘 표현하지 않는 신체는 노랫말과 풍경의 뒤로 우스꽝스럽게 뒷걸음질 한다. 풍경은 또한 정교하게 선택된다. 공연장으로 선택된 장소며 뮤직비디오의 프레이밍은 말할 것도 없다. 제도미술의 관습을 포기했거나 위반하는 것이 분명한 미키밴드의 농담같은 행동들은 그들이 선택한 논쟁적인 장소와 풍경으로 인해 가장 제도화된 미술의 관습중 하나인 풍경의 재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처해있는 혼란이자 의도적인 비틈,더불어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의 혼돈과 웃음이다. 밴드를 욕망하는 대중의 눈에 말할 수 없이 과잉된 동경과 혼돈이 동시에 비칠때, 비로소 밴드는 은퇴한다. 그리고 밴드는 은퇴함으로써 신화가 된다. 미키밴드는 은퇴를 기다린다. 그것은 가장 드라마틱한 사라짐을 위한 전성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영원한 판타지로 미끄러지기 위해, 목적없이 소비되는 장소와 역사의 불협으로 남기 위해.



금천예술공장 2012 오픈 스튜디오 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