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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en eun young jung

 
SlowRush/20070620
그/녀는 누구인가?
정은영

핑크, 비키니, Virgin, S라인, 하이힐, Sexy, Event, Bar, 그리고 지하 1층…

…지하에 대해서라면 한남연립 마동 베란다에서 욕망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당신의 지하를 구경할 수 있는 베란다를 욕망한 때가 있었다. 거기서도 널어놓은 팬티는 잘 마르는가? (김행숙, 지하 1F에 대해서 중.)

지하에 대해서라면 잘 마르지 않은 팬티를 입고 완벽한 S라인을 유지하고 있는 저 핑크색의 몸들이 욕망할 곳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다만, 이들의 지하세계를 구경하기를 욕망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니, 가끔은 팬티가 바짝 마르는 볕 좋은 로얄층의 베란다보다 지층의 축축한 습기가 나을 때도 있긴 한가보다. 어쨌거나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핑크색의 몸들은 지하 1층에 살고, 팬티를 입기는 한다고 한다. 간혹 팬티를 벗는 날이 있다고도 하는데, 팬티가 축축해서 인지 어쩐지 그 이유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웃의 남자는 이 지하 일층을 한참 동안이나 욕망하고 또 욕망하였다. 그가 욕망한 것이 지하 일층이었는지, 핑크색이었는지, 비키니였는지, Virgin이었는지, S라인이었는지, 혹은 하이힐, Sexy, 아니면 Event거나 Bar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남자의 욕망은 커져만 갔다. 몇 날 며칠을 고통스런 얼굴로 벼르고 벼른 끝에 결국 그곳에 비밀스레 다녀온 그의 얼굴은 다소 거만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는,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로 입을 열어 자신이 본 것들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자’에 대해서라면 핑크, 비키니, Virgin, S라인, 하이힐, Sexy, Event, Bar, 그리고 지하 1층으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의 지인들 가운데 요통을 무릎쓰고 척추에 힘을 주어 그다지도 요염한 몸짓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혹은 내고자 하는 존재라면, 끼 떨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게이인 S 씨와 우아함과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주는 트렌스젠더 B씨 이외에는 참으로 보기 힘든 경우라는 것이다. 어째서 이웃집 남자는 저 간판의 핑크색 몸들이 당연히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저 간판이 지시하는 것이 여성의 몸을 교환경제의 상품으로 삼고 있다는 것임을, 여자인 나보다 먼저 알아챈 것일까? 어째서 이성애자 남성의 욕망은 이다지도 쉽사리 그 응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일찍이 “여성은 남성들간의 교환대상”이라고 성토한 게일 루빈Gayle Rubin의 말을 떠올렸더라면, 이웃집 남자를 비롯한 수많은 남자들의 눈 밑을 나날이 검게 만든 이 핑크색의 몸들이 ‘여성’이라는 젠더로 호명되어 남성들 사이에서 교환된다는 사실을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을 것이다. 아무런 개연성이 없는 기표들로 가득한 이 기이한 간판이 실은 ‘여성’이라는 기호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찰떡같이 알아 들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여성’은 기호이며 재현”이라고 말했던 저명하신 페미니스트 이론가 테레사 드 로레티스Teresa De Lauretis의 전언마저 떠올렸더라면, 이 간판이 보여주는 본질론적인 재현의 전략과 억압의 구조에 몹시 분노함으로써 이 재현을 재배치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의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치적 올바름을 재확인해 마땅한 순간을 누렸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금 이 간판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여성’이라는 기표가 특정한 ‘몸’을 투명하게 명시한 적이 있던가? 저 핑크색의 몸 어디에 여성과 여성성이 재현되고 있단 말인가? 이 과도하기 짝이 없는 포즈가 즉 여성성임을 인정한다면, 나의 죄 없는 친구들인 S씨와 B씨가 전시하는 여성적인 몸은 또한 어떻게 재현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 여성적인 몸을 욕망하는 퀴어Queer들의 욕망은 저 지하의 공간 안으로 밀려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난대 없이 젠더간의 경계를 흩뜨리고 젠더퀴어들을 불러모으는 핑크색의 그/녀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갈 데까지 갔어도 당신의 지하를 구경할 수 있는 베란다는 욕망의 영역이다./ 나는 저녁에 화분을 사러 나갈 것이다. 나는 베란다의 여자답게 꽂힐 것이다. 물주러 오는 남자는 병신이다. (김행숙, 지하 1F에 대해서 중)


<교통정보>
지하철 2호선 홍대 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와 50m 전진